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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평면 등촌리 여의마을(club_7_dc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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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평면 등촌리 여의마을
  • 마을현황및소개
    0.군정소재지에서 북쪽으로 23.6km. 면소재지에서 남쪽으로 약 2km지점에 있는해발 약200m의 중산간 마을이다.
    0.서쪽은 용두산과 금장재를 경계로 하여 부산면과 인접해 있고,북쪽은 축내리와경계하고 있다.
    0.용두산(551m)의 산맥과 주변의 산악이 애워싸고 있고, 산악 사이의 계곡이 마을을 향하여 뻗어 있어 剩水地形의 분지를 이루고 있다.
    0.세대수 및 인구 : 16세대 인구24명(남:10명, 여:14명)
    0.마을이장 : 백정석(862 - 0560, 010-9882-2850)

    마을유래
    0.풍수지리설 : 서쪽산이 용두산이고, 마을이 용이 여의주를 물고 있는 형국이
    라 하여 如意洞 이라 오래전 부터 불리어 왔다. 또 이곳은 兵禍에 蔣風之處라
    하여 6.25동란 때에도 피해가 없어으며 수복후 산간지방 소개령에도 화를 입지
    않은 곳으로 명당지라 전해지고 있다.
    0.마을을의 연혁
    .1600년경 수원백씨 白漢杓(1627~1687)가 장흥에서 살다가 아거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魏澱(1527~1609)의 총묘로만 보아도
    훨씬 이전부터 마을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947년(정묘지),1989(호구총수),1910년(경술지)에는 여의동으로 나타나 있
    으나1938녀(무인지),1966(병오지)에는 등촌리의 한마을로 속해 있다.
    .1973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등촌리에서 분리되어 다시 여의리가 되었다.

    마을자랑
    0.주요사건과 자랑
    .주요사건 : 병화에 藏風之處라은 풍수지리설이 적중했던지 산간오지임에도 불
    구하고 여러 난리를 겪으면서도 인명이나 가옥의 손실이 전혀 없었다.
    .자랑 : 1974년 퇴비증산에 장흥군 1등을 해서 수상 했는데, 이는 마을사람들의
    단합된 의지와 근면함을 말해 주는 것으로 자랑으로 꼽을 수 있다.
    0.문화유적.유물
    .사딩터 : 1647년 개설한 이견제 서당터가 있다.
    .如意薺 : 1958년 건립된 여의동 백씨 문중의 제실.
    0.민속놀이
    .당산제 : 정월 대보름날 짓등에서 당산제를 지냈으나 6.25후 폐지되었다.
    .가정신앙 : 가정에서 제사 지낸 후 사자밥 거래밥 을 대문밖에 짚을 깔고 놓아
    둔다. 야외에서 식사를 할 때 멱기전에 고시례 를 한다.
    .세시풍속 : 2월 초하루 하드렛날 하늘에서 영등할머니가 내려 왔다가 20일에
    승천한다 하여 2월을 영등달이라 한다. 영등할머니는 바람신이기 때문에 바람
    을 몰고 온다고 하여 농어촌에서는 풍재를 면하기 위해 영등할며니와 며느리에
    게 고사를 지낸다. 영등할며니가 딸을 데리고 오면 별 탈이 없지만 며느리와
    함께오면 농가에서는 재앙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날 바람이 불면 바람영등,
    햇빛이 나면 불영등, 구름이 끼거나 비가 오면 물영등이라 하고 바람영등이
    내리면 가물고, 물영등이 내리면 풍년이 든다고 한다.
    0.구비전승
    .남매정
    을도 담도 없는 집에 시누 올케 빨래가니
    소낙비가 쏟아지니 물보라가 닥치더라
    시누 올케 한물에 쓸어가니

    그 오빠의 거동보소 물속으로 뛰어가서
    이리저리 헤맬적에 올케손과 동생손이 만져지니
    동생손은 얼른 놓고 새댁손을 잡아내네

    이꼴되니 그네 동생 하는 말이
    오빠오빠 우리오빠 남매정은 어따(어디)두고
    부부정이 더 하던가 오빠죽어 개구리되고
    나는 죽어 뱀이 되어 삼사월 긴긴해에
    방아간 뒤뚝에서 만납시다.

    . 호식총 이야기(?)
    虎食 당한 자는 해골만 남게 되므로 시루를 씌워 둔다. 시루구멍이 아홉개이
    므로 그중 중앙에 가락(옛날 물레에서 실을 뽑아 내던 쇠꼬치)을 꼽아 놓는데
    이는 흔이 구천을 헤멘다는 뜻으로 가락을 꼽는 것은 다시 호식을 못하도록
    한다는 뜻이다.(제보 전삼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