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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평면 양촌리 양촌마을(club_7_ycy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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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평면 양촌리 양촌마을
  • 마을현황및소개
    0.양촌마을은 장흥읍에서 동북쪽으로 20km. 면소재지와는 50m 거리에 있는 마을로 동쪽으로는 장동면 봉동리, 남으로는 용강리,서쪽으로는 등촌리,북으로는선정리와 접해 있다.
    0.마을 앞으로는 용강천이 흐르며,동에서 흐르는 정자천과 합하여 수리조건이좋으며 평야지는 비옥한 옥토를 이루고 있다.
    0.장평면의 중심지로 고려초부터 치소로 기록되고 있고, 일제시 왜군현병이 주둔했던 곳이기도 하며 옛부터 인구의 전출입이 잦은 곳이다.
    0.세대수 및 인구수 : 68세대 인구125명(남:60명,여:65명) 2015년 7월 1일 현재
    0.마을이장 : 문경복(862 - 6926, 010-3647-3434)

    마을유래
    0.풍수지리설 : 특별히 전해 오는 것은 없으나 유수원이라는 사람이 장평에 들어
    가 文千武萬의 吉地(현 장평초등학교자리)라 하고 장평터를 보존하려면 세 개
    의 탑을 세우고 용두산 락맥의 하나인 卵山巢의 잘린 능선을 이어야 지기가 바
    로 보존 될 것이 라 하였다.
    유수원이 여기는 무서운 자리라 하여 피한 곳은 그후 일본 현병대가 주재하여
    애국지사와 양민을 학살한하는 곳이 되었다 한다.
    0.마을의 연혁
    .골안(谷內)마을 : 고려말 길씨가 입주하여 취락을 조성하였다고 하며 그후 조선
    조 때 장흥에서 거주하였던 竹山人安의(1574~1629),安就珏(1786~1842)가
    이 주 정착 하였다고 한다. 장택00의 안쪽이 되므로 골안이라 하였다.
    .새재등 마을 : 鳥재, 혹은 巳峙嶝이라고도 부른다. 지형이 새의 등 또는 뱀의 등
    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고려말 밀양 박씨인 浚洙가 강진에서 이주
    해 와 삶면서 성촌되었다고 한다.
    .枾木마을 : 양촌리의 골안에 살던 주민들이 옮겨와 살았을 것으로 추정하며 18
    세기 중엽 유치면 조양리에서 거주하던 文鳳默(1820~1895)이 임리의 선산을
    관리하다 이곳에 정착하였다고 전한다. 감나무가 많아서 감나무골 또는 시목
    이라 한다.
    .西便마을 : 조선 중엽(1676년 전후) 文受白이 노년을 보내기 위하여 이곳이
    文千武萬地라는 말을 듣고 이주해 와 살게 되었다고 한다. 안골의 서쪽이라
    하여 서편마을이라 하는데 옛날에 馬富者가 이곳에 살았다 하여 마부자터라고
    도 한다.
    .1747(정묘지)에는 副谷으로,1789년(호구총수)에눈 良村으로,1910년(경술지)
    에는 陽村, 富谷으로,1938년(무인지) 이후에는 陽村으로 나타나 있다.

    마을자랑
    0.주요사건
    .1372년(공민왕 21년) 임자 6월에 왜구의 침입으로 倉米를 약탈 당함.
    .1910년8월5읿부터 1925년5월10일 경찰지서로 변경될 때까지 일본헌병 분견
    대가 주둔하면서 많은 항일의병과 항일투사를 투옥,고문,햑살,폭행,노략질을
    하였다.
    .당시 투옥된 자사들을 살펴보면 : 尹一三,孫武景,宣道明,嚴大萬,鄭士欽,朱태경,
    尹洪八,周근신浩,權澤,朱文才,文乃鉉, 金益洙,朱亨五,李世昌,朱在浩,高光信,尹
    一, 金有根,白仲基,(鄭士欽은 1909.4.26.오전6시 사창장터에서 총살당함)
    .자랑 : 양촌농악은 장평농악을 대표 할 만큼 유서가 깊고 조에가 있어 보림문화
    제 행사에는 장평을 대표해서 출전한다.
    0.문화유적.유물
    .시목 고인돌 군 : 마을에서 북서쪽으로 100m 쯤에 있는 구릉 정상부 밭에3가
    있다. 2개는 잘 보존되어 있으나 1개는 상석이 옮겨져 있다.
    .양촌 고인돌 군 : 마을 뒷편 구릉에 있는 안종철씨 밭에 북동 - 남서의 타원 으
    로 군집되어 있다. 칠성바위라 불리우며 옛날에는 제릉 올렸다.
    .節義碑 : 죽산인 안의(1574~1629)의 충절울 기리기 위하여 세웠다.
    (10대손 종埰가 세움)
    .忠熱閣 : 前章陵參봉陞嘉善大夫戶曹參判 田公在平記念碑. 전재평1863~1922)
    이 1903년에 재산 20석을 마을의 구휼사업에 희사하였으며 그의 며느리 수원
    백씨도 남편을 잃고 노부모를 봉양하고 가솔,선영을 돌봄에 그 효열을 기리기
    위하여 향민들이 세웠다.
    .施惠碑 : 前通政大夫 敦寧部都正張公致明 施惠碑.1855년4월 장평,장둉면민이
    세웠다.
    .善積碑 : 면장 문재봉 선적 부망비. 1931년12월에 세움.
    .施績碑 : 유인 김해김씨 시혜비. 회관부지를 희사함으로써 1973년 양촌리민이
    세움.
    .紀積裨 : 墓山 曺炳振 선생 기적비.1976녀 세움.
    .親善契鎚模墓碑: 선비추모정신과 선조유업을 계승하고 친목을 도모하고자
    1988년 12월에 세움.
    .紀念碑 : 寶林洑監 安鐘埰 기념비. 1906년 장서면민이 세움.
    .紀念碑 : 면장 임유춘 기념비. 1917년 장평면민이 세움. 비면의 마모로 1991년
    3월 재건.
    0.민속놀이
    .가정신앙 : 각 가정에서는 기제사나 명절 때 차례를 지낸후 사자밥 을 대문밖
    에 짚을 깔고 놓아두며, 산이나 들에서 음식을 먹을때 먼저 조금씩 떼어 주위에
    버리면서 구수레 를 한다.
    .세시풍속 : 경칩에는 논이나 들, 계곡에 가서 개구리 알을 먹는다.
    이를 용알 먹으러 간다고 하며 허리 아흔 이에게는 약이 된다고 믿는다.
    또한 벽을 바르면 빈대다 고 하며 허리 아픈 이에게는 약이 된다고 믿는다.
    또한 벽을 바르면 빈대가 없어지고, 물에 재를 타서 그릇에 담아 집안 네 귀퉁
    이에 놓아 두는 것도 빈대를 없애는 방법이기도 하였다.
    .민속놀이 : 6월 유두나 7월 백중날에는 농주를 마시며 윷놀이와 농악놀이를
    면서 즐겼다.
    부녀자들은 둥그렇게 모여 앉아 손수건을 몰래 옆 사람의 손에 건네주며 술래
    가 찾지 못하도록 하는 사발통문놀이를 한다.
    이는 원래 갑오동학농민혁명이후 연락문서를 전달하는 방법에서 유래된 것이
    라 한다.
    .씸김굿 : 3 ~ 4인의 무당을 초빙하여 무덤이나 집안에서 초저녘부터 새벽까지
    밤새워가며 씻김굿을 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당제 : 당산나무에서 정월 보름에 제사를 지냈으나 6.25이후 없어졌다.
    .굿배미당제 : 거북알 당 앞엣 장씨 부자가 년 2회 농신제를 지냈으나 지금은
    없어졌다.
    0.전승노래(쌍가락지 노래/제보자 : 임홍종)
    쌍금 쌍금 쌍가락지 호적질로 닦아내서
    먼데보니 천일러니 저해보니 다리로다
    저-처녀 자는방에 숨소리가 둘이로다
    오라버니 오라버니 옹달복송 오라버니
    거짓말씀 말으시오 동지섣달 설한풍에
    문풍지가 떠는소리 거짓말씀 말으세요
    물명제라 석다수건 묵을메어 죽었으니
    앞동산도 묻지말고 뒷동산도 묻지말고
    연대밑에 뭍어주소
    가랑비가 오거들랑 삿갓으로 덮어주고
    소나기가 오거들랑 거적대기 덮어주고
    우리친구 날찿거든 앞동산도 없다하고
    뒷동산도 없다하고 연꽃속에 보라하소